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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이야기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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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05. 우리 한번 인류가 되어볼까요 - 감자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딱 한점 가질 수 있다면, 푸른 바탕에 하얀 꽃이 꿈처럼 수 놓인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두고 잠깐 고민하겠지만 역시 <감자 먹는 사람들>을 택할 것이다. 세계가 칭송하는 천재 화가가 아니라,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또래의 어느 네덜란드 청년이 그린 어둡고 쓸쓸하고 가난한 눈빛들을 벽에 걸어놓고 오래 마주하고 싶다. 갓 쪄낸 감자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어둡고 쓸쓸하고 가난한 그 사이를 파고들어 맑게 데우고, 가만히 어둠의 경계를 녹인다. 지우개로 슥슥 연필선을 지우는 것처럼. 감자를 마주한 이들의 어깨를 그러쥔 어둠이 부드럽게 뭉그러지면, 어둡고 쓸쓸하고 가난한 눈빛들이 마침내 따뜻하게 빛난다. 차갑지 않다.


눈빛이 따뜻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흙을 팠을 투박한 손으로 감자를 한알씩 집어먹으며 나눴을 이야기를 생각한다. 오늘은 수확량이 조금밖에 되지 않았어. 흙을 파다가 돌이 눈에 튀었어. 치즈를 먹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할 것 같아. 누군가 한 말에 속이 상했어. 따끈한 감자를 한입 베어 물고선 저마다 마음의 이야기를 한 알씩 꺼내놓는다. 감자 곁에 살며시 꺼내놓는 이야기는 감자처럼 포근포근 따뜻하고 어딘가 여린 이야기가 제격이다. 번듯하고 반짝반짝하고 매끈매끈한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어 그 주위를 망설이다 슬며시 사라진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 되어 볼까요

... 믿을만한 상담사이자 친구에게 내 결점 하나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잊을 수 없는 말로 축복을 받았다.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내 친구는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았다...(중략) 이런 말은... 무서운 소외감에서 우리를 구원해준다. 이런 말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임무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요즘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못난' 나를 떳떳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내가 드디어 세상의 못남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려나). 세상의 잘남이 지겨운 사람들이 "나 못났어!"하고, 나였다면 감추기에 바빴을 이야기들을 훌훌 잘도 털어놓는다. 세상이 못 들을까 봐 크게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회사에 적응 못해 열 번도 넘게 퇴사한 사람, 갑자기 직장에서 잘리고 스무 살 어린애들과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사람, 작가가 되보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다 말아먹고 결국 나이 칠십에 취업시장에 뛰어든 사람... 엄마가 세 명인 사람도 있고, 다섯 살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속으로는 움찔움찔헀다. 세상에 못난 사람은 너무 많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너무 많다는 그 사실에 더 깜짝 놀랐다. 내 못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좋아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이 내 안에 차올라 흘러넘쳐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다. 어린 부모는 삶과 다투느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고,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차마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쌓아 올린 이미지인데. 세상엔 온통 잘나고 반짝거리는 사람들만 가득해 나 자신이 참 못나고 초라했다.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하고 못난 마음을 데리고 못난 하루를 사는 못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못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따로 있는 걸까. 숙제로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과 내가 보는 일기장이 따로 있었다(그러고 보면 그 덕분에 엄청난 양의 습작을 한 셈이다). 글을 쓰는 도구가 컴퓨터가 되면서부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우는 날이 많았다. 한 줄 쓰고 울고, 한 줄 쓰고 울고. 못난 마음을 잔뜩 써 내려간 글은 당연히 못나서 누구에게 보여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의 못난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힘이 생겼다. '내가 너보단 낫지'라는 알량한 정신승리가 아니라, 이렇게 '무능한'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토록 많은 못남을 갚는 방법은, 내 못남을 드러내는 방법뿐이겠구나. 못남이 진짜 못났을 때는 혼자 가만히 가지고 있을 때뿐이었다. 사람들이 세상에 꺼내놓은 못남은, 실은 저마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나의 못남도 누군가에게 가닿아 뭉클이 될 수 있다면! 혼자 몰래 그늘에서 쓰던 글을 양지바른 곳으로 한발 슬쩍 밀어놓을 수 있게 된 것도, 세상의 사람들이 용기 있게 꺼내놓은 수많은 못난 이야기들 덕분이리라. 한 번은 내 글을 읽은 어떤 분이 나에게 "그렇게 다 까발리면 홀딱 벗은 느낌이지 않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벗을 생각까진 없었는데요!). 다만 초라하고 못난 마음이 여과 없이 다 드러났구나 싶어 부끄러운 한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나도 꽤 못났구나, 라는 이상한 의기양양함과 함께.


백오십 년 전에 바다 건너 작은 섬나라에서 감자를 나눠먹던 사람들,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던 못난 사람들의 눈빛에 자꾸 내 눈빛을 포개 보고 싶은 이유는 그들이 감자와 함께 나눴던 못난 이야기들 때문이리라. 못나고 여린 마음을 나누고, 기꺼이 끌어안던 사람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흔히 감자를 어려운 시기를 나게끔 해주는 구황작물이라고 하는데, 여럿이 둘러앉아 김이 폴폴 나는 보드라운 감자를 한 입 베어 물면 마음이 어려운 시기도 왠지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감자를 먹으며 속마음을 덜컥 꺼내면 어렵던 마음에도 김이 폴폴 날 것만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둘러앉아 감자를 나눠먹으며 "어디 못난 이야기나 한번 해봅시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글을 읽는 이들에게는 감자 한 알 만큼의 온기를 건네고 싶다. 멋진 척은 다 내려놓고서 나의 가장 여리고 어두운 부분을 투명하게 나누고 싶다.


이렇게 나도 인류가 되어가는 걸까. 비로소 감자 먹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엉덩이라도 붙일 수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감히 소망해본다. 인간의 임무에 온 생애를 바쳤던 네덜란드 청년에게 감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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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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