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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03. 갈증이 좀 채워졌어요? - 가지 까망베르 파니니


나도 코로나의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한 장에 무려 천오백 원이나 하는 일회용 마스크가 내 지갑을 알음알음 털어가더니 급기야 다음 달부터 월급이 삭감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무실의 누군가가 나지막이 신음했다.

"나라가 이럴 때일수록 경제 살려야 한다고, 펑펑 쓰고 다닌 나 자신이 밉네요!"

물론 나도 두 팔 벌려 '오마이 카드값'을 부르짖고 싶었지만 대표실 유리 너머로 빼꼼 들여다본 대표님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어두워서, 내 마음의 어두움이 밝게 느껴질 정도였기에 이 연사 아무것도 외치지 못했다.



월급마저 털리다니

처음으로 자취를 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글에 곧잘 등장하는 표현 하나가 있다. '숨 쉬는데도 돈이 든다는 걸 몰랐다.' 이걸 머리로 음, 그렇겠군 짐작하는 것과 감각하는 것의 차이는 뭐랄까, '백두산 천지에서 떠온 물'이라는 카피가 적힌 생수병을 들고 마시는 것과 직접 백두산을 걸어올라 마침내 천지에 도착해 두 손을 조심스레 맞붙이고 한 모금 떠마시는 것만큼의 간극이다.


1인 가구인 나는 월급 삭감이란 말을 듣고 여러 가지 것들을 재빨리 떠올려본다. 떠올랐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대출이자, 집세,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핸드폰비, 인터넷비, (갑자기 지난달에 가입한 얼마 안 되는) 보험료. 다달이 고정으로 나가는 비용 외에 수시로 떨어져 채워두어야 하는 것들도 생각해본다. 휴지, 물티슈, 치약, 비누, 여름이면 보통 열 통 가까이 쓰는 선크림, 그리고 또... 당분간 한모에 육천 원짜리 두부를 못 먹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내적 자아가 격분해서 날뛰기 시작한다. 갑자기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오렌지가 먹고 싶고, 다른 참외 말고 고오급 유기농 참외가 그렇게 당긴다. 꼴랑 250그램에 만원을 훌쩍 넘는 햇 산딸기도, 방울토마토에 설탕을 찍어먹으면 될 것 같은데 굳이 왜 사 먹는지 모르겠는 이름도 거창한 대추방울샤인마토도, 모두 다 불현듯 먹고 싶다. 먹고 싶은 메뉴만으로 이미 뷔페가 한상 가득이고, 마음속에서는 돈 버는 자아와 살림하는 자아가 벌써 한바탕을 벌이는 중.


돈 버는 자아 : "어쩌지, 앞으로 몇 달은 좀 어렵겠는데..."

살림하는 자아 : "얼마나요?"

돈 버는 자아 : "모르지 나도...(꾸깃해진 셔츠를 벗으며) 그나저나 요즘 산딸기 나올 때 되지 않았나."

살림하는 자아 : "아유, 산딸기는 무슨 산딸기예요. 월급까지 줄어든 마당에 딸기도 먹기 겁나는구먼."

돈 버는 자아 : "아, 거 얼마나 한다고... 하루 종일 돈 버는데 그거 하나 못 먹나!"

살림하는 자아 : "지금 돈 번다고 유세예요, 뭐예요! 집에서 내가 노는 줄 알아요?"

돈 버는 자아 : "그럼 집안꼴은 대체 왜 이모양인데!"

자, 이상 월급 깎인 서글픈 자취생의 모노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 제목은 <나 혼자 살면 이렇게 된다>.



이제 그만 돌려주세요

찐한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니 곧 점심시간. 평소처럼, 평소 같은 도시락을 싸왔는데도 오늘따라 먹기 싫다. 물론 사무실에 앉아있는 건 돈 버는 자아다. 살림하는 자아가 아침에 부랴부랴 싸준 도시락엔 눈길도 안 간다. 갑자기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 두툼하게 속을 채운 샌드위치가 머릿속에 구체화되기 시작하더니 점점 파니니로 발전한다. 엄밀히 말하면 파니니는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인데 왜 일반 샌드위치보다 비쌀까. 


어쨌거나 한번 파니니를 떠올린 이상, 잘 구운 가지에 썬드라이 토마토와 치즈를 듬뿍 올려 속을 채운 파니니가 먹고 싶다. 마침 회사 근처에 '모 대기업 회장도 자주 찾는다'는 유명한 맛집이 생각났다. 몇 번 기웃거려 본 적이 있는데, 점심시간마다 만석이라 늘 실패했었다. 내가 월급은 대기업 회장 발끝에도 못 미쳐도 점심 메뉴는 같을 수도 있다 이거야. 내가 마! 느그 회장님이랑 마! 같은 식당에서 밥도 (따로) 먹고! 마! 다했어!


코로나 때문인지 점심시간마다 그득하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앉을 수 있는 구석자리로 안내받았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접시와 포크, 나이프가 근사했다. 그래, 점심시간은 이래야지! 곧 그토록 고대하던 파니니가 나왔다. 잘 구운 가지에 썬드라이 토마토와 치즈를 듬뿍 올려 속을 채운 그 파니니. 들뜬 맘으로 크게 한입 베어 문 파니니는!... 그냥 그랬다. 한입 베어 문 순간 알았다. 나는 사실 파니니가 먹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만 좀 깨작거리다가 테이블에 팔을 괴곤 한참을 앉아있는데, 마침 옆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열심히 뭔가를 썰던 남녀 중 한 사람이 상대방을 향해 물었다.


"양식에 대한 갈증이 좀 채워졌어요?"

그 말을 들고 한 시간이 다 지나도록 그대로인 내 접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속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하나도 안 채워졌어요."


내가 먹고 싶은 건 파니니도, 산딸기도, 그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던 평소에 대한 갈증이었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거닐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영화관 의자에 마음을 푹 놓고 파묻히던 저녁도 없어진 지 오래고, 주말이면 불 앞에서 칼을 쥐던 손의 감각도 뭉툭해졌다. 잘 구운 가지도, 잘 말린 토마토도, 고소한 치즈도 없이 그저 맹숭한 빵만 질겅질겅 씹는 것 같은 일상이 벌써 몇 달째 계속되고 있잖은가. 물론 빵이라도 씹을 수 있는 처지라는 사실이 감사하지만, 나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대구 집 마당엔 이제 한참 라일락이 피어날 준비를 할 텐데, 그 곁에 하루 종일 앉아서 킁킁거려야 힘이 좀 날 텐데 올해는 대체 어디서 힘을 얻을 수 있으려나.


사무실로 돌아와 밀어두었던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냈다. 맨날 먹는 밥인데도, 어제랑 똑같은 반찬인데도 어찌나 그렇게 맛있는지. 모니터를 보며 밥을 먹는 나를 보고 "점심 안 드셨어요?"하고 누군가 묻기에, 가만히 끄덕끄덕했다. 코로나로 인한 특식은 실컷 먹었으니, 이젠 제발 나에게 평소를 돌려주기를. 밥투정 안 할게요.


(+) 월급도 돌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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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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