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이야기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주 마인드풀에 관한 다채로운 정보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은 오른쪽 상단의 '호스트 시작하기'를 참조해주세요. 


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07. 터닝포인트 - 한잔의 차


마시지도 못할 차를 우린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설령 안다고 해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아내의 작은 조각들. 손아귀 힘이 세서 피클병을 잘 열고, 벗어둔 속옷이며 양말 따위가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고, 길가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따위. 시시때때로 마시지도 않을 차를 우리는 것도 아내의 특징 중 하나인데, 책상 위에도 창가에도 심지어 세면대에도 아내가 우린 한잔의 차가 놓여있다. 집안 곳곳에 놓인 찻잔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왠지 좀 글썽이는 마음이 되었는데, 차 한잔의 여유를 위해 번번이 노력하지만 끝내 차 한잔을 마시지도 못하고 다른 뭔가를 해야 했던 아내의 하루를 괜히 넢겨짚어봤기 때문이다. 아내가 단순히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차를 우리고는 툭하면 잊었을 수도 있지만, 아내가 이혼을 결심하고 찾은 변호사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다가 변호사가 권한 한잔의 차(마누카 꿀차였다)를 마시며 놀랍도록 환한 얼굴로 좋아하는 장면을 보곤, 차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잊어버렸을 리는 없다고, 분명 차 한잔의 작은 여유조차 방해하는 일이 있었을 거라고, 그런 하루가 거듭되다 보니 남편이 기억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거라고 나름대로 추측할 뿐이다.


영화에서는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차 한잔에 이렇게나 감정이입을 하며 아내 편을 드는 이유는, 실은 요즘의 내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차 한잔 분량의 작은 여유를 갖고 싶지만, 채 한잔이 우러나기도 전에 출근 전부터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 몇 통을 받고 나면 차고 뭐고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정확히는 차를 우린 기억조차 없다. 전화기를 한쪽 어깨와 턱 사이에 괴고, 당연히 운동화를 신은 두 다리를 풀가동해 놓칠세라 간신히 잡아탄 지하철에서 숨을 고르며 출근하고 나면 수시로 쏟아지는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 때문에 끼니까지 거른 날엔 거참 뭐랄까. 한 끼를 대하면서 마음을 여유를 갖고 먹으라는 어쩌고 저쩌고 한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사기꾼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거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 우린 차 한잔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식은 차를 벌컥벌컥 마시며 이건 '웰컴 티'라고, "자,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라고, 혀끝에 남아 있는 쓰고 떫은 타닌처럼 쌉쌀한 위로를 해보며 생각하는 거다. 대체 오늘 뭘 했지? 하루를 시작하며 차를 우리고 하루의 끝에서 식은 차를 마시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다가 러닝타임이 1초인 영화를 보고 난 것처럼, 시작하자마자 엔딩인 하루. 식은 차를 끼얹으며 달아오른 몸의 피로를 식혀볼 뿐이다.


알뜰한 차 한잔을 마신다

차 한잔도 못 마시는 하루를 살면서 뭐 그렇게 대단한걸 한다고 이 유세인가.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건 애당초 내 몫이 아닌 거다. 출간이고 연재고, 뭐 여차하면 회사고 뭐고 그냥 다 접고 반듯하게 누워서 벽지 무늬나 좀 세다가 그게 지겨워지면,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아침부터 소주며 맥주 까는 추리닝 차림의 할아버지들 틈에 슬쩍 끼어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거지. 출근할 때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러다가 그게 지겨워지면... 좋은 날씨가 다 저물고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집을 빠져나와 동네 카페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숨만 쉬고 있는데, 친구의 연락이 왔다. "나 소설가 되고 싶어." 예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친구라 "치킨 먹고 싶어."류의 덤덤한 일상의 고백이었지만, 나보다 더 자주 끼니를 거를 것 같은데 아직까지 뭔가를 갖고 있다는 게, 갖고 있는 것도 없으면서 버거운 마음에 모조리 놓아버리고 싶은 나에겐 그날따라 조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친구를 만나서 한건 별거 없다. 동네 작은 일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친구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이 집은 차가 맛있어."라는 말에 따라 차를 마셨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한옥이라 차를 마시다 고개를 살짝 들면, 내가 좋아하는 푸른빛이 도는 이 계절의 밤하늘과 머리 위에서 맑게 빛나는 달과 별이 보였다. 선선한 바람이 대화 사이사이 스미고, 덕분인지 별거 없는 우리의 세상 사는 이야기도 좀 선선하게 느껴져서, 왠지 슬그머니 살만한 기분이 들었달까. 차를 실컷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밤,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펼쳤다. 작가의 친필 사인을 강조하며 내게 건넨 책이지만 별 기대는 없었다. 책이 괜찮지 않아서가 아니라, 요즘의 내가 괜찮지 않기 때문에. 단 한 줄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고, 단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었다. 읽으려고 잔뜩 사둔 책들의 단 한 줄도 하나도 좋지가 않았고, 이런 날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차에 카페인 성분이 많았는지, 잠 못 들고 친구가 선물해 준 책을 뒤적거리는데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생활을 알뜰하게 하는 사람은 늘 부지런하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때론 나태하고 더러 힘쓰지 않고 살려는 사람이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자는 것이 실용적인 소모라고 자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육상화를 신고 파워 워킹하며 열량을 점검하는 대신 슬리퍼를 끌고 슬렁슬렁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뱃살을 쓰다듬는 저녁 산책은 '소모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의 여백은 본받을 만하다. - 김현,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알뜰하다'라는 말로 시작해 '여백'으로 끝나는 글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알뜰하다는 건 빈틈이 없다는 거고 여백이라는 건 말 그대로 빈틈인데, 어째서 알뜰하게 하는 사람은 빈틈이 있는 사람인 걸까. 스스로를 알뜰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생활의 빈틈을 모조리 '실용적인 소모'로 채우려고 안달복달하며 사는 나인데, 왜 여백이 없고 나니 결국 알뜰한 사람이 아니게 된 걸까. 생활을 알뜰하게 하는 사람은 아침에 따뜻한 차 한잔의 빈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 운동화 신고 전철역으로 파워워킹하는 대신 주변의 풍경도 좀 살피며 슬렁슬렁 걸어갈 수 있는 사람. 더 많이 일하느라 끼니를 거르는 대신, 뱃살을 쓰다듬으며 "오늘도 많이 먹었네"라고 중얼거릴 줄 아는 사람인 걸까. 알뜰하다는 말을 내가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다면, 나는 이제 좀 방향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쫓은 알뜰함은 단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히 행복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는 있었으니까.


친구와 차를 마시며 나눈 말들 가운데, 문득 "나는 너의 터닝포인트야."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도 힘주어서 두 번이나. "무슨 터닝포인트를 내가 정하지 네가 정하냐"는 핀잔으로 되받아쳤지만, 따뜻한 차 한잔과 좋은 시를 데려와 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준 찻자리를 떠올리고 보니, 그 말을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끈을 꽉 묶은 운동화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는, 좀 다른 방향의 알뜰한 사람이 되어볼까 싶으니까. 며칠 만에 겨우 글을 쓰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ABOUT AUTHOR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작가 호스트 소개 바로가기

    


점심시간 12:30 - 14:00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