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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15편|뛰어넘으려는 자와 뜀틀의 마음

부제_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아사나를 할 때 종종 나를 뛰어넘으려는 마음을 발견한다.

 

뛰어넘으려는 의지는 좋은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과연 그럴까. 이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놓은 ‘노오력’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회 담론에 세뇌된 의지일 수 있다. 때로 사람들은 아픈 건 아픈 거고, 목표를 향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고 악착같다. 그러나 경전에서 말하는 ‘무소의 뿔’은 그 의미와 다를 것이다.

 

“담론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삶이 담론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사회에서 제공한 이야기 중 몇 가지를 내면화한다. 그 이야기들은 나를 만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그에 맞춰 행동함으로써 그 이야기들을 더 영향력 있는 것으로 만든다. 담론은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 사회에서 어떤 담론이 이루어지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 명법 『은유와 마음』  중

 



골반을 열어내는 아사나를 할 때, 나는 나에게 하나의 ‘뜀틀’이 된다.


 

 

아사나를 하는 내가 있고, 그걸 바라보며 서 있는 내가 있다. 나는 나를 뛰어넘고 싶어서 선생님이 지시하는 스텝대로 모두 따라가려고 한다. 앞으로 뺀 한쪽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고 다른 쪽 다리는 뒤로 빼내 아래로 주저앉으려는 자세에서 골반 라인을 늘린다. 그때 통증은 골반 라인에서 존재를 알린다. 통증을 감지하자마자 멈출 수도 있지만, 나는 통증의 목소리를 한순간 무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고자 욕심낸다. 앞에 서서 바라보는 내가, 아사나 안에서 ‘뜀틀’이 되어야 하는 내게 자신이 뛰어넘을 수 있는 자세까지 낮아지기를 바란다.


 


나를 바라보며 선 ‘나’는 때로 통증 안에 있는 ‘내게’ 무심하다.

 

“지금 자리에서 이미 충분하다면 그대로 머뭅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선생님은 한결같이 조언하신다. 자신의 통증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머물 자리도 알 수 없다고. 자기 안에서 통증을 감각하라고.

 

한 번에 급하게 취하려고 하면 금방 돌아옵니다. 억지로 자세를 만들어내고 고통을 참으면 거기서 머물고 싶은 게 아니라 빨리 그 자세에서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에서 여유가 있다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며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온몸에 힘을 주고 고통을 참으면 언젠가 한계는 오고 포기하지만, 여유와 평화 속에 머물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머물지 잠시 휴식할지.”

 

뛰어넘으려는 마음은 다면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방적이지 않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어느 ‘결’ 속에 마음의 이야기는 존재한다.

1초라도 경험하려는 마음은 뛰어넘으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미 그 자리가 1초의 경험마저 끌어올린 지점이라면, 어떤 1초는 1초에 불과할지라도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설사 나일지라도 모든 ‘나’에게 그 선택이 합당한 건 아니다. 오직 나를 사랑하는 나만이 그 미묘한 ‘결’을 읽어내고 알맞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순간순간 마음의 욕심이 부푸는 나를 알아차린다. 과연 나는 현재 욕심이 부푸는 만큼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일까?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닥치면 한다는 말을 한다.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일이 나를 확장하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오직 하나의 ‘나’를 소환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일인가?’

 

고통스럽더라도 이제는 뛰어넘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 내가 있고, 고통스러우니 편한 곳에서 멈추라고 말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여기 통증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갖고 이 통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말하는 ‘나’도 분명히 어딘가의 ‘결’ 속에 존재한다.

 

다음 페이지의 글을 읽어내려면 이전 페이지의 내용을 깊이 이해해야 하듯, 더 가는 것보다 여기서 오래 깊어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바탕이 된다. 다음 스텝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번 스텝에서 만족할 만큼 유연해져야 한다.

 

“이야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이야기가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더 큰 이야기, 즉 담론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 큰 이야기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 그것이 내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물결은 저절로 방향을 바꾸듯이 거대서사가 달라지면 내 이야기도 저절로 달라진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바뀔 때 나의 이야기도 바뀌기 시작한다. 치유의 핵심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역할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명법 『은유와 마음』  중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 움직일 때를 기다리는 것. 언제든 지금의 상황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내 앞에 선 나를 바라본다.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많아. 여기서 좀 더 머무를게.’

 

나는 앞에 선 나를 향해 말한다. 포기가 아닌 선택을 말한다. ‘뜀틀인 나’의 마음은 ‘뜀틀 앞의 나’에게 자연스레 연동된다. 앞에 선 나는 안온한 미소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만으로 평온이 찾아온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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