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이야기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주 마인드풀에 관한 다채로운 정보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은 오른쪽 상단의 '호스트 시작하기'를 참조해주세요. 


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11편|어디에 가든 그곳에 당신이 있다

부제_우리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들

 

허리, 목, 어깨, 턱, 머리에 혹부리 영감처럼 통증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살던 때, 단 하루라도 좋으니 이 늘어진 통증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절히 바랐었다. 통증 주머니가 말끔히 사라진 몸은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할까. 그런 편안한 상태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 모든 통증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매끈하고 가뿐한 하루를 영위할까. 자세가 바로 선 사람들을 볼 때면 늘 상상하고 부러워했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쇄골 뼈 아래 잠들어 있던 통증이 아치형으로 날 선 등을 끌어올리는 고양이처럼 단단히 뭉친 몸을 굴린다. 그러면 하루가 통째로, 산 채로 통증에 잠식당한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머물던 시절에는 종일 일만 했다. 와세다 대학이 있는 다카다노바바 역점 롯데리아에서 오후부터 마감까지 일했는데, 당시 나 말고도 ‘박상’으로 불리던, 동갑내기 한국인 남학생 한 명이 더 있었다. 주방은 그가, 홀과 카운터는 내가 거의 도맡아서 일했다. 일본인 알바생이 ‘땜방’을 부탁하면 열이면 열 거절하지 않고 일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일본 명절에도 가리지 않았다. 매일 평일 런치타임 3시간 동안은 나카노 역에 있는 작은 한국식당에서 서빙 일을 했고, 그 외에 남는 시간에는 한국어 과외를 했다. 당시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던 일본인은 4명이었다.

끼니는 대부분 롯데리아에서 파는 100엔짜리 햄버거나 편의점 식품으로 대신했다. 그때는 어째서 그렇게 근시안적이었는지 몸을 아끼는 일일랑은 ‘1도’ 하지 않고 몸 대신 돈을 아끼고 모으는 데 악착같았다. 수능을 봐서 일본 대학에 들어가면 계속 일본에 머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국립대라고 해도 대학 등록금이 만만찮았기 때문에 일 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모아야 했다. 모서리 진 귀퉁이 공간을 애매하게 잘라서 기어코 방으로 만든 것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매일 밤 마음이 가위로 오려지는 것처럼 외로웠지만,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도 사람들에게 치여서 마음이 잘려나가기는 마찬가지였고, 차라리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외로움만 감당하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 마음이 좀 성하고 싶었다.

 

수능시험을 보던 날, 시험지를 받아들고서 떨어질 것을 예감했다. 돈을 버는 데 온 정신을 쏟느라 원하는 만큼 후회 없이 공부하지 못했고 그 부족함으로 메우지 못할 부분들이 보였다. 시험이 어렵다기보다 충분히 공부하지 못해서 듬성듬성 구멍 난 부분들이 닥쳐왔다. 예상대로 대학시험에서 떨어졌고, 두 번은 미련 갖지 않았다. 만약 일 년 더 공부했다면 지원했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 거라고 나중에 J에게 말하곤 했지만, 실은 더 이상 공부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일 년만 생각하면서 달려갔으므로 그 일 년 동안 남김없이 에너지를 몽땅 써버렸다. 더 공부하면 됐을 것이라는 말은 그러니 사실 비겁한 변명이다. 그게 당시 내 최선이었던 거다.

 

 

요가 명상 중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요가 수련을 합니다. 하지만 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요가 수련을 하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요소, 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 방해 요소들은 평화롭길 원하는 우리를 제한하기 때문에, 제한해서 우리의 능력을 한정 짓기 때문입니다.

 

아사나 수련 중에는 역시 발목과 무릎의 통증, 요통이 정신을 온통 지배해버린다. 여기에 힘이 있고 유연하다면 통증보다는 시원함을 느낄 것이고 아사나를 하면서도 명상하는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좌 자세로 고요하게 머무는 명상이 끝난 뒤에 아사나 수련을 하는 것은 자세만 달리 한 명상의 연장선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이 명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통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통증이 평화를 가로막는 요소들이고 곧 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들이라고 받아들였다. 고통스럽더라도 이 통증과 직면하고 파괴해나가지 않으면 이는 영원히 내 몸에 혹 주머니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나를 괴롭힐 것이다.

 

때때로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란 말은 강한 자의 무신경하고 거친 말로 들렸고, 어떤 고통은 피하는 게 상책이며 누군가에겐 그런 삶의 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었다. 물론 그런 시기도 필요하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러나 결국 지나쳐버린 통증은 돌고 돈다는 사실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일본 생활 끝에 내게 돌아온 것은 결국 허리, 목, 어깨, 턱, 머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통증 주머니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처음 요가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오래도록 '마음의 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은 마치 웅덩이 같았고, 그 깊숙한 곳에 존재했던 구멍은 막혀있었다. 출구가 막힌 몸은 구정물로 그득 차 걸을 때마다 휘청거렸다. 탁한 구정물 속으로 손을 밀어 넣어 구멍을 뚫고 싶은데, 몸의 순환을 일으켜 자기 정화를 도모하고 싶었는데, 답답하기만 하고 당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들이 수챗구멍 같은 거기에 꽉 틀어박혀 있었다. 마음이 막혀 있으니 몸도 덩달아 굳어서 몸속에 찬 구정물에 맥없이 휩쓸렸다. 이렇다 할 방법을 모른 채 사람들의 말과 눈빛에 얻어터지며 쓰러지고 기절하기를 거듭하다가 살기 위해 일본으로 피신했다. 그 상태로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기만 했으므로. 글을 쓰든 번역을 하든 온전히 내 삶을 살려면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요소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에 가서도 나는 스스로를 혹사시키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서 더 이상 내게 멋대로 닿을 수 없는데, 그들 대신 내가 나를 홀대하고 있었다. 이미 너덜해질 대로 너덜해진 몸과 쓸쓸한 마음은 경솔해지기 일쑤였다. 제대로 이해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한 채 멀리멀리 달아나봤자 내 마음에 붙은 몸인 것이다. 내가 나를 홀대하는 한,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가서든 내게 소속된 몸과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요가 수련의 진정한 보상은 가면 뒤에서 걸어 나와 멋지지만 단점도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할 때 따라온다. 감출 필요도, 사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모든 모습이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자신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 그런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서 단점을 고치게 한다.

자신의 거짓된 모습에 솔직해지면 마음이 부르는 방향으로 생명 에너지를 보낼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숨기지 말고 열어 놓는 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당신이 믿고 있는 거짓말보다 한발 앞서 나가지 않는다면 삶에 발전은 없다.

선불교에서 하는 말처럼 “어디에 가든 그곳에 당신이 있다.” - 배런 뱁티스트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 중

 

결국에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그 수밖에 없다. 물론 도움을 받을 순 있다. 이런 황폐함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시간을 벌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때도 나를 사랑해주는, 나 대신 나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를 만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다. 그 존재가 한 세계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그 도움닫기로 일어서야 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내 평화를 방해하는 것은 통증들이다. 몸과 마음의 통증들. 그 통증들이 내 능력을 제한한다고 의식한다. 통증들에 직면하고 파괴하려고 함으로써 내 능력을 옥죄고 있던 쇠사슬을 풀 수 있다면...... 가뿐한 몸으로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면...... 때로 그런 생각으로 통증을 가만히 느끼려고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 막힌 구멍을 감각한다. 치료사의 마음으로 내 안의 통증을 바라보려고 한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작가 호스트 소개 바로가기


점심시간 12:30 - 14:00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