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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10편|심해(心海)로 가라앉기

부제_여기서 머물겠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어떤 책의 저자가 이런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3년간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종일 책만 읽었다. 개관시간부터 마감시간까지 세 권이고 네 권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났더니 3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동안 읽은 책들이 내면에 켜켜이 쌓여 어떤 사고와 시각을 형성했고 거기서부터 저절로 글줄이 터져 나왔다고.

‘1만 시간의 법칙’이 여기서도 해당하는 걸까.

 

20대 중반 꿈도 고민도 많던 시절, 한창 일어 공부를 같이 하며 어울려 다니던 8살 많은 언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언니는 공부하기 싫을 때 어떻게 해요?”

일어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당시 나는 미래를 생각하면 막연한 색채만 떠올라서 물었다.

 

“그냥 안 해. 다시 하고 싶어질 때까지 다른 걸 하면서 놀아.”

 

이국의 언어를 생계수단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와 달리, 그 언니는 비교적 가뿐한 감각으로 일어를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공은 그림이었고, 호주 유학파에 일본어도 기본회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시 언니는 32살이었고, 나는 24살이었다. 그때는 언니의 그 말이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영 공부가 하고 싶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아마도 나는 그렇게 되물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안간힘을 다해 일어를 붙들고 있었다. 그 길밖에 살아날 구멍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시중에 나온 일본어 능력시험 1급 수준의 문제집과 일본어 번역 책들을 거의 스무 권 가량 사들여서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빠짐없이 풀었다. 일본소설 원서를 사서 일일이 사전을 들춰가며 혼자 번역하고 원서를 필사하기도 했다. 매일 이대 역에서 시청 역까지 걸어 다녔으며, 시청점 스타벅스에 가서 하루 8시간씩 공부했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벅스 커피 값이 워낙 비싸니까 그때도 돈이 없어서 이전에 마셨던 일회용 컵을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몰래 가져가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곤 했다.

 

다행히 1년 만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서울로 상경할 때만 해도 일본어 능력 1급이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번역을 하려면 거기서부터 시작이었고, 그 알량한 1급 자격증을 품고 일본어 능력을 요구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더라도 언제나 불안했다. 나 스스로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등바등 붙들면서 공부한 것은 언제까지나 나를 아등바등거리게 했다. 그토록 죽지사지 공부한 걸 놓칠세라 잊을세라 자꾸만 놓지 않으려고 용을 썼으니까.

 

가까운 미래에 해야 할 일들이 미리 거대하게 닥쳐오면 그때부터 내 시간들은 몽땅 훼손된다. 이걸 해야 한다, 저걸 해야 한다, 이걸 안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지, 저걸 안 하면 내가 힘들어지겠지 하는 생각들. 스스로 심장에 무리를 주는 망상들. 나는 그런 부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언제나 탁월했으므로 현재에 몰두할 수 없었다. 현재에 충실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현재를 즐기지 못했다.

 

* * *

 

시작 명상이 끝나면 선생님은 첫 자세만큼은 무리하지 않고 다리를 뻗은 채 힘을 빼고 몸을 구부려보라고 권한다. 이때는 가장 편한 지점을 찾아서 그냥 몸을 구부린다. 다리를 좀 더 뻗으려고 하지도 않고 등을 애써 펴내려는 노력도 없이, 나를 뛰어넘으려 하지도, 힘을 주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여기서 머물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푹 놓는 게 핵심이다.

 

몇 번 그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명상 후 몸을 구부린 채 힘을 뺐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냥 여기서 머물겠다는 마음으로 숨을 쉬면서 점점 힘을 푹 놓아갔다. 무릎 위로 들려 있던 코가 어느 순간 무릎 사이에 파묻혔다. 어떤 욕심도 의무도 없이 그냥 여기서 머물겠다고 마음에 선포하고 났더니 그 자리에서 저절로 깊어졌다.

 

어쩌면 힘을 얻기 전에는 먼저 힘을 놓는 연습이 필요한 것일까.

신체 구석구석 잠재해 있는 힘을 깨우는 아사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그 자세를 권하는 데에는 분명히 선생님의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명상 중 호흡법에는 이런 것이 있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힘을 놓듯이 숨을 끝까지 비워낸다. 하복부와 회음부에 찬 마지막 남은 숨 한 방울까지 비워내고 나면 저절로 다시 숨이 차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도서관에서 종일 책을 읽었던 그 저자는 어쩌면 3년을 꼬박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힘을 놓듯 숨을 비워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몸속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숨마저 다 토해내고 났을 때, 어느 순간 저절로 숨이 차오르며 다른 무엇도 함께 차올랐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후 다시 그가 숨을 내쉴 때 글도 같이 쏟아졌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가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는 단순히 나도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서 열심히 책을 파면 될까, 그러면 나도 글이란 걸 쓸 수 있을까 막연히 동경하고 의욕에 찼다. 일본어는 문짝에 낀 옷자락처럼 내 손에서 떠나지도 붙들려 있지도 못한 상태였고,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소설을 써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아도 머릿속에서는 댕댕거리는 타종 소리만 들렸다.

 

언제나 마음만 숨차게 내달리고 있고 내부는 ‘공(空)’하고 ‘냉(冷)’했다. 연료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마음은 너무 쉽게 지쳤다. 늘 감당할 수 없게 무겁고 가벼웠다. 무엇 하나 선택하지 못하고 다 붙들려다가 무거워졌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해 온전히 가진 것 하나 없어서 냉(冷)하도록 가벼웠다.

 

30대 초반까지도 나는 일어의 옷자락을 붙들고 버텼다. 그러면서 얼굴은 소설을 향해 돌아가 있었다. 번역 아카데미에서 일 년가량 더 공부한 뒤, 마침내 일본어를 놓았다. 정확히는 놓은 게 아니라 놓쳤다. 결국 몸과 마음의 전원이 나가버렸고, 이후 2년가량 나는 지옥 같은 무기력의 나날 속에서 간신히 숨만 쉬며 살았다. 활자를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나고 숨구멍이 쪼그라들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집에 있는 책들의 책등을 모조리 벽 쪽으로 돌려놓고 그래도 글자가 보이는 곳은 하얀 A4 용지를 붙여 가렸다. 방안에 온통 하얀 종이들이 붙어서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바람에 들썩였다. 마음 같아선 가진 책을 모조리 팔아치우고 싶었지만 책 한 권 들 기력도 없었다. 책 가까이 손을 가져가기만 해도 촘촘히 몸을 붙이고 대열한 활자 군대의 열기에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 당시 살던 곳은 경기도의 한적한 마을이었고, 베란다 유리문을 열면 논밭이 너르게 펼쳐졌다. 시야가 닿는 곳은 뻥 뚫려 있고 고요했다.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 아담한 정자도 있었다. 주변에 편의점이나 구멍가게라곤 없었다. 카페나 편의점에 가려면 최소 15분은 한적한 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당시 나로서는 그나마 그런 환경이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달까. 아무리 방안의 글자를 모조리 차단해놔도 창문을 열었을 때 휘황찬란한 글자들에 ‘눈퉁이’를 맞아야 했다면 그야말로 미쳐버렸을 거다. 방을 잘 선택한 덕에 그나마 미치는 일은 면할 수 있었고 방구석에 멍하니 앉아 마음껏 숨만 쉴 수 있었다.

 

나름대로 처절하고 지난한 시간을 지나온 끝에, 지금은 내 안에서 뭔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손들이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핏대를 세우며 소설을 붙들던 손아귀에서도 힘을 뺐다. 마음을 다해 중장편 소설 한 편을 쓰고 나자 소설은 붙든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소설은 마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마음을 힘으로 소유할 수 없듯 붙든다고 붙들릴 소설이 아니다. 다시금 힘을 빼고 비워진 마음으로 소설 곁에 다가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붙들었던 손을 떼고 저만치 앞에 떠 있는 소설을 가만히 바라본다.

 

숨을 쉴 때마다 소설에 대한 정념도 알게 모르게 옅어졌다가 탁해졌다가 한다. 하타요가를 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눈금을 바라본다.

 

지금은 그냥 여기서 머물겠다, 단지 여기 머물겠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마음과 소설의 간격도 되어가는 대로 자연스레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좁혀지거나 멀어지거나. 혹 멀리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설의 꽁무니를 바라보는 날이 오더라도 울지 말자. 소설의 행복을 빌어주자. 하지만 내 곁으로 또 한 번 밀려온다면 뜨겁게 사랑하자. 그만 괴로워하고 기쁘게 사랑하고 싶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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