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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7편|내 안의 신성한 빛이 당신 안의 신성한 빛을 향해

부제_몸을 경험한다는 것

 

"아주 옛날에 인간에게는 신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신적인 힘을 남용하자 신들은 노했고, 인간에게서 신적인 힘을 빼앗기로 했습니다. 산에 있던 신은 인간의 신성한 힘을 산속 깊숙이 숨기자고 했고, 바다에 있던 신은 바다 속 깊이 감추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신이 말하기를, 인간은 교활해서 어디에 감추든 그 힘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인간 안에,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숨겨둔다면 인간은 그 힘을 쉽사리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 안에는 신성한 힘이 깊숙이 잠들어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가슴 중앙에서 하나의 밝은 빛이 커지며 서서히 미간과 정수리를 넘어서는 것을 느끼며 자기 명상에 들어가 봅니다."

 

명상 시간부터 시작되는 선생님의 조언은 그날 이루어지는 수련 과정에서 하나의 테마로서 자리매김한다. 명상에서 수련 동작 하나하나 깊어지는 과정을 지나고 지나서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기승전결을 이루는 이야기, 수련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난도의 수련 동작에 맞닥뜨리면 초반에 선생님이 언급했던 이야기나 조언은 잊힐 때가 있다. 고통은 고통으로써 나의 감정을 흐트러뜨리고 두려움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엄습한다. 특히 나에게 약한 신체 부위를 써서 동작해야 할 때, 고통은 성난 태풍처럼 내 안의 평온을 휘저어놓는다.

 

이번엔 허리와 무릎의 통증에 지배되는 날이었다. 요통이야 허리 수술을 했던 어린 시절부터 자각하고 있던 통증이지만, 무릎 통증은 하타요가를 하면서 처음 알아차렸다. 마라톤 연습을 할 때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릎이 종종 아프긴 했어도, 주로 오른쪽이었고 하중을 버티며 무릎을 쓰는 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엎드린 자세에서 양 팔을 뒤로하고 양 발등을 잡은 채로 상, 하체를 들어 올릴 때, 허리 통증에 버금갈 정도로 왼쪽 무릎 뼈가 아팠다.


 

무릎 안의 뼈와 뼈가 서로 맞부딪혀 버티다가 어긋날 것처럼 아파서 뒤로 돌린 팔로 발등을 잡아당기기가 고역이었다. 더구나 하체를 그대로 뻗은 채로 상체만 들어 올리는 ‘부장가 아사나’를 제대로 하기에도 이미 요통은 인내의 범주를 넘어선다.



 


이 자세를 할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요추로만 버티려고 하면 분명히 한계가 옵니다. 목을 등 쪽으로 넘기면서 요추 위쪽 척추를 움푹하게 구부리며 깊어지려고 해 봅니다. 등 척추는 잘 쓰지 않기 때문에 깊어지기가 쉽지 않지만 숨을 쉬면서 1밀리미터라도 자기 나름대로 깊어지려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심하게 통증을 바라보기’를 계속 권하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어떻게든 통증을 태연히 받아들이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할까.

 

나중에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무릎과 허리가 아팠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안 쓰는 근육을 쓰면 그 근육이 ‘부드럽게’가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무릎 뼈를 압박하기 때문에 아픈 거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통증을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지만 안 쓰는 근육을 조금씩 쓰는 경험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을 알게 될 거라고 하셨다.

 

“이제 조금 느낌이 오더라고요. 어느 근육을 쓰면 무릎에 무리가지 않게 동작을 할 수 있는지.”

 

그 자리에는 무릎을 수술하고 수련을 시작한 수련생도 있었는데 8개월 만에 어느 정도 고난도의 자세를 해내는 분이었다. 그분의 말을 듣고 보니 요통이 무섭게 엄습해올 때마다 ‘난 수술한 사람인데 괜찮을까.’ 하고 나약한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요가 수련을 하면서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건 몸이 유연해지거나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하는 추상적이고 디테일 없는 말이 아니라, 그 속의 뼈대를 감각하는 경험의 확장인 것 같다. 우리 몸은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하다. 목을 뒤로 넘길 때 어깨와 팔뚝에 얼마만큼 힘을 조절해야 하고 그로 인해 목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다리를 펴고 앉은 자세에서 상체를 구부려 척추를 펴낼 때는 무턱대고 용을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골반을 당겨오고, 하복부와 허벅지에 힘을 주어 등을 펴내는지, 몸 구석구석의 잠재성에 대해 알아차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매일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이며 쓰는 근육만 쓰기 때문에 우리가 편하다고 느끼는 자세는 실은 익숙해서 둔감해진 감각의 오류일 수 있다.

 

여러 번의 수련을 통해 몸의 경험은 확장된다. 요추로만 버티던 동작에서 다른 주변부 척추의 유연성과 뿌리 근육의 힘을 획득함으로써 요추의 통증을 덜어내는, 통증의 원인을 오로지 통증이 이는 지점에만 두지 않고 미개척지 부위의 잠재력을 깨워서 통증을 분산한다. 마치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을 보는 관점이 편협해지지 않는 것처럼, 음식을 한쪽이 아닌 양 쪽으로 씹어야 턱관절의 불균형이 오지 않는 것처럼, 몸 구석구석에 둔감해진 영역을 자극하고 열어서 새롭게 몸을 지지하는 고리이자 통로를 만드는 것 아닐까. 커튼 고리가 많을수록 커튼이 더 촘촘한 물결을 이루며 단단하게 늘어지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 ‘무심하게 통증을 바라보기’가 힘겨운 건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령은 몸의 경험을 확장할수록 생기므로, 역시 과정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수련을 마칠 때쯤, 가슴 앞에서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나마스테 자세’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앞서 수련을 시작할 때 말한 설화는 나마스테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나마스테는 우리 안에 신이 숨겨둔 신성한 빛이 있고 그 빛을 믿는 마음입니다.”

 

'나마스테(Namaste)' 자세는 'Heart chakra(가슴 차크라)'에 '신성'이 있다고 믿는 동작이다. 인도에서는 '나마스테'를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말로 쓰는데, 그 어원은 '당신 안의 신에게 절합니다'라는 뜻으로 '당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수련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인사하곤 하신다.

“제 안의 신성한 빛으로 여러분 안의 신성한 빛을 향해 경이의 인사를 보냅니다. 나마스테.”

 

한동일 선생님의 『라틴어 수업』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 ‘그대가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뜻의 인사말을 통해 타인의 안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러니까 나마스테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대로 존재함을 믿듯, '당신'이라는 존재 또한 그대로 존재함을, 그 존재만으로 신성하고 경이로운 일임을 믿고 존중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대로 평안히 존재하기를,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타인을 대하고 스스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일도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한 힘을 깨우는 존재 연습을 한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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