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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4편|장르불문 모든 장애는 기회일까요?

부제_통증에도 발언권이 있다면

오늘은 명상 중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들이 떠다니는지 바라보았다.

내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었고, 나는 그 비난의 목소리를 향해 반박하고 항변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명상하는 내내 떠들썩했다.

 

선생님은 ‘아즈나 차크라’를 수련하라고 말씀하셨다. 부처처럼 온화하게 미간을 펴보는 것. 미간에서 힘을 빼보는 것.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생기는 얼굴 주름에는 눈가와 팔자 주름 말고도 미간에 패는 주름이 있다. 집중할 때나 어떤 생각에 골몰할 때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을 주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아도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미간에 팬 주름 때문에 인상이 바뀌었다. 선하고 순한 인상에서 사납고 고집 세 보이는 인상으로.

한때는 그런 인상의 변화가 싫지만은 않았다. 좀 사나워 보여도 무른 느낌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끔,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끔 의도적으로 미간에 힘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미간이 패는 정도가 심해서 점점 못난 인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인상이 못나지니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고 칙칙해졌다.

이제라도 미간의 주름을 펴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선생님이 ‘아즈나 차크라’를 언급하셨을 때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내 안에 그런 인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  *

 

수련 중, 뭉뚱그려진 동작들은 접힌 종이를 펼치듯 넓게 펴지고 나뉘었다. 우주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듯 천천히 세분된 동작들에 접근하면서 순간순간 몸 어느 부위에 힘이 들어가는지 자각했다. 분절된 동작 하나하나는 시간을 들이며 깊어졌는데, 비로소 한 동작을 제대로 하기에는 내 몸 구석구석이 성실하게도 굳어 있음을 또 알아차린다. 어떤 동작은 허리가 꺾일 것처럼 위태했고, 어떤 동작은 목 근육이 찢길 듯 불안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요가 수련을 할 때 하기 어려운 아사나를 만나면 그 아사나는 장애로 느껴지기 쉽다고.

인생에서도 우리는 장애를 만난다. 장애는 상황일 수도, 질병일 수도, 관계의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회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마치 비틀린 척추를 바로잡기 위해서 때론 통증의 감각에 머물러야 하듯. 장애를 기회로 여기는 수련자가 되길 바란다고.

 

그러나,

삶에서 만나는 장애가 기회로 여겨야 하는 장애인지, 정말 나를 피폐하게 몰아가는 장애인지 나는 자주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것이 어려워서 자꾸 방황하고 어지럽다.

 

이럴 땐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한동일 선생님이 『라틴어 수업』에서 하신 말씀을 끌어온다.

 

"사실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냥 “쌩까”라고요.(...)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또한 벗어났다고 해서 다시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늘 들여다보고 구분 짓고 빠져나오는 연습을 해야 해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갈등과 긴장과 불안의 연속 가운데서 일상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삶이기도 하고요. 결국 고통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의 표시입니다. 산 사람,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끼는데 이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순이 있는 소망이겠지요. 존재하기를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나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끌어온 자기 합리화의 말이자 또 다른 우회의 길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한쪽에서만 오지 않는다. 고통이 고통으로 존재하는 것은 쌍방에서 피할 길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 것. 결국 선택은 내 몫이겠지.

 

'고통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표시'라는, 끝내 요가 선생님의 조언과 같은 맥락으로 흘러가는 부분을 읽을 때는 씁쓸해진다. 통증에도 발언권이 있다면 호소문을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모든 통증은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우회의 길일까. 권태와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자극제 역할을 위임받기라도 한 걸까. 내 안에 거하는 모든 통증의 발언을 들어보고 싶다. 정말 내가 통증을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결국 나는 마음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는 걸까.

 

"쌩까"라는 말만 선별해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 나 역시 누군가 '쌩까'는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워지는 마음. 두 마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고통을 느낀다. 이것은 정말 살아 있음의 표시일까.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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