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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3편|아틀라스의 마음

부제 _ 무엇이 나를 위하는 일일까

“이번 모임 같이 갈래?”

“아니... 꼭 가야 해? 왜 매번 떠밀 듯 물어봐?”

“나도 힘들어. 애들이 뭐라는 줄 알아? 나보고 진짜 결혼한 거 맞냐고 해.”

 

관계에 얽힌 J와의 갈등은 오래되었다.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였던 우리의 묵은 갈등은 강둑이 무너지듯 다시 터졌나왔다.

J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족, 친지와 친구들-속에 나를 동반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에 익숙하고 그 속에서 행복과 의미를 느끼며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J는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삶의 형태들을 동경한다.


나는 그 보통의 일들이 내키지 않고 어렵다. 동양 특유의 집단적 삶의 형태 속에서 누구의 자식은 이렇더라, 쟤는 저렇더라는 섬세하지 못한 판단의 말들을 들으며 컸고, 본의 아니게 혼자 산 시간이 오래되면서 나를 지키려면 ‘혼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마치 한번 컵 속을 휘저으면 혼탁해져서 한참 소요가 가라앉지 않는 액체처럼, 나에게는 마음의 잔잔함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면, 어렵사리 깃든 평온은 설탕 덩어리처럼 맥없이 깨지거나 녹아 뭉쳤다. 내 마음의 성질 탓에 만나는 친구도 없었지만, 지방에 머무는 엄마를 보러 가는 일도 일 년에 한 번이 겨우였다. 거의 명절에는 가지 못했고, 엄마 생신에는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던 내가 J라는 사람을 만나 못하던 것들을 해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J의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가족 모임이 잦은 것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J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이 두렵고, 애써 가려하니 내 마음이 기껍지 않아서 또 문제였다. 이런 내 마음을 바꾸는 게 맞는 걸까.

 

라이언 홀리데이의 『하루 10분 내 인생의 재발견』에서는 고대 스토아 사상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의 통제 하에 있지만 어떤 것들은 통제를 벗어나 있다. 의견, 선택, 욕망, 증오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 재산, 사회적 명성과 지위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은 자연의 본성에서 유래했다(...) 우리 마음속에 모든 것이 있다. 바깥세상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보다 내면으로 방향을 돌릴 때가 훨씬 낫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모든 것이 있다’니... 내 마음은 내 것이니 자유자재로 변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로서는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심정에 이입되지 않을 수 없다. 스토아 사상가의 말대로라면 내 의견과 마음은 통제할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외부 사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면 나는 피할 수 없이 J와 연결된 관계들을, 현재의 마음을 바꿔가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선뜻 납득되지 않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근근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 끝으로 농구공 돌리듯 지구를 돌려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그 무엇보다 부대끼는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 통제할 수 없는 일 같다. 내 마음에 부침이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외부 요소와 마음이 맞지 않는 것일 텐데 무조건 내 마음만을 바꿔야 할까. 때로 어떤 외부 요소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단호히 통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 그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조차 어렵다.


 (네이버 지식백과/미술대사전(인명 편) - 아틀라스)


나는 외부 요소를 외면하든지 받아들이든지 선택해야 한다. 외면한다면 비난을 감수하고, 타인이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받아들인다면 내 마음이 부침을 겪으며 괴로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그로 인해 삶의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까지.

물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갈래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괴롭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의미를 발견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마지막 선택지가 지금 내게는 가장 어렵다.

 


 

수업은 다기에서 우린 보이차를 마시며 시작된다. 거기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예열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반다’ 즉 에너지를 보유하는 수련을 했다. 몸속 어딘가에서 막혀 있거나 맥없이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어떻게 잘 붙들어서 내 몸의 힘이 되게끔 흐르게 할 것인가.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어려운 동작을 시도하기 직전이 가장 어렵다. 막상 그 동작에 들어가면 신체 부위가 아프고 힘들 것을 알기 때문에 시도하기를 겁내는 것이다. 그럴 때는 마음에 부담을 버리고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다. 단 1초만 그 동작을 하고 말자. 1초만이라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거나 경쟁하기 위해 무리하게 동작을 버티는 건 좋지 않다. 결국 그 동작은 나를 위한 것이므로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해서 알맞게 조절하는 게 좋다. 우리는 과정에 있고, 과정을 경험하며 수련하는 것이라고.

 

결국 어떤 일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1초를 경험하더라도 나를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다면 나를 위하는 길은 무엇일까.

내키지 않더라도 관계 속에 있어보려고 하는 것일까, 아님 지금의 나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마음이 내킬 때까지 예정 없이 기다려보는 걸까.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자세로 수련하면 여지없이 통증이 발생한다. 선생님은 그 통증의 감각을 바라보기를 조언하셨다. 수련하던 자세에서 빠져나오면 온 신경의 머리채를 붙들던 통증의 손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사라진다. 이 소멸의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괴로운 감정도 결국은 소멸하리란 것을 배운다고.

 

세상 속에서 혹은 관계 속에서 나는 늘 ‘예민하고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지만, 수련하는 동안 얻는 조언의 말들은 나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보듬게 한다. 누구보다 내가 먼저 나를 위하는 길이 무언지 생각하고 이해해보도록 이끌어준다.

 

지금 나는 어려운 동작을 시도하기 직전의 위치에 있는 걸까. 1초를 경험하더라도 나를 위한 마음으로 동작하듯 관계를 시도해봐야 하는 걸까. 그런 대입은 물론 관계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내 마음에 소요를 일으키지만, 남이 휘젓는 소요가 아닌 나 스스로의 바람인 것이다. 자발적인 소요의 바람. 그 안에서 충분히 나에게 시간을 주며 고민하고 또 다독이는 시간을 갖는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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