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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15. 기회는 얼마든지 - 케이크


실패가 무서워

"내일부터라고? 서비스 이용 전에 환불신청 가능하니까 얼른 오늘가서  환불신청해."

새벽 수영을 시작한다는 친구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던진 답이다.


나는 두 번의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한번 실패 하면 끝! 어느 정도 삶이라는걸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삶에서 한번에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한번에 잘 안되는 것이 삶의 속성인 것 같기도. 사실 뭔가를 한번에 잘 해낸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누구나 붓을 잡으면 밥 아저씨처럼 '참 쉽죠?'가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밥 아저씨는 나쁘다. 안 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몸으로 삶의 속성에 홀로 맞서며, 고단한 레지스탕스의 길을 걸어왔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어!'라는 글자가 휘갈겨진 시뻘건 깃발을 탁 꽂은채로. 그래서 늘 공중에서 줄을 타듯 아슬아슬,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처럼 애를 쓰며 살았다. 뭐든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악착같이 했다. 원래 부지런한 천성 덕분인건지, 마음 속에서 뚝배기 마냥 뭉근히 끓고있는 성공에 대한 갈망 때문인건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호승심 때문인건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귀가 따갑게 들은 '너는  잘 될거야' 라는 말에 실린 묵직한 압박감 때문인건지,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내 삶을 딱 열글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실패하지 않으려 참 애씀'.


새로운 도전을 앞둔 친구에게 그토록 냉정한 말을 무심히 던질 수 있었던 이유도 내 무의식의 '재도전 불가' 버튼이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삑- (친구는 여러번 다이어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 순간엔 둘다 웃으며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넘어갔지만, 집에 돌아와 문득 '아차, 내가 무슨  말을 했지?'싶었다. 또 작동했구나. 미안한 마음으로 슬며시 오븐을 꺼냈다. 당근케이크를 구워야 할 것 같다. 


실패보다 따뜻한 

나는 당근 케이크를 퍽 좋아한다. 나같은 사람이 많은지 당근 케이크는 웬만한 까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맛있는 집은 찾기 힘들다.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때는, 일정 내내 하루에 두 곳이상은 당근 케이크를 찾아다녔다. 제주도는 당근이 맛있으니까 제주당근으로 만든 케이크는 당연히 맛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저기 당근 케이크를 찾아 다니면서 사기전에 꼭 "여기서 직접 만든건가요?"라고 물어봤다. 십중팔구 고개를 저었다.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집은 따로있고, 거기서 떼다 파는 가게가 많았다. 그럼 내가 아무리 제주도를 뒤지고 다녀도, 결국 내가 먹는 케이크는 한 두종류일 뿐이잖은가. 누구인가, 제주도의 당근 케이크 마스터는. 제주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당근케이크를 여러번 먹고 나서는 당근케이크 대신 제주산 당근을 샀다. 


집에서 케이크를 굽는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이 케이크를 한번도 구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일단 저울을 꺼내고 모든 재료를 계량해야한다. 냉장고에 있던 재료는 냉기가 돌지 않게 미리 꺼내두고, 밀가루 체를 내리고, 당근을 갈고, 오일과 설탕과 견과류 따위를 넣어 반죽을 하고, 오븐을 예열하고, 케이크가 구워지는 동안 혹시나 탈까봐 초조해하고, 마음이 초조한 한편으론 손을 재빠르게 놀려 바닥에 흩뿌려진 흔적들을 치우고 어느새 탑처럼 쌓인 그릇을 닦고나면, 최소 한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모든 공정을 끝마친 후 작고 둥근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걸 먹자고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케이크를 구울 때마다 실패에 대한 초조함과 만들고 난 뒤의 허탈함이 차례로 나를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케이크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꼭 한번 내 손으로 근사한 당근케이크를 구워보고 싶었고,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근사한 당근케이크 레시피를 찾게 됐다. 이렇게 만든 케이크는 여러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한입 왕 베어물고 떠오르는 기분좋은 미소를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실패하는 걸 몹시 두려워하지만, 나만의 당근 케이크 레시피를 찾기 위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케이크를 나눠먹을 때의 온기같은 게 좋았기 때문이다. 


이젠 성공이니 실패니 결과에 대한 지레짐작이나 두려움없이 그저 신나게 즐기고 싶다. 매순간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답고 싶다. 황홀한 실패를 얼마든지 경험하고 싶다. 수영을 마치고 온 친구에게 당근케이크를 건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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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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