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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이야기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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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은 오른쪽 상단의 '호스트 시작하기'를 참조해주세요. 


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12. 가장 약하고 가장 따뜻한 - 밥


마감이 코앞이라 일주일 넘게 못 자고 못 먹다시피 하며 원고에 매달렸더니 삼 킬로 가까이 빠졌다. 밥 잘 챙겨 먹잔 이야기 쓰면서 밥 굶기는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있나.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동동거리던 참이었는데, 피곤이 극에 달해 한 문장만 들여다봐도 구역질이 나서 입덧하는 산모처럼 입을 틀어막았다(다음에는 이렇게 작업 안 하고 싶다...). 퀵으로 원고를 보내고 나니 출판사에서 '이번 주말은 잘 쉬세요'라는 답장이 왔다. 다음 주에도 잘 달려야 한다는 뜻이지만 어쨌거나 이번 주말은 좀 쉴 수 있겠구나. 그제야 간신히 막아 세운 피곤과 식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끼니를 거르거나 빵, 과자, 인스턴트 죽 같은 걸로 허겁지겁 때우는 동안 제일 먹고 싶었던 건 밥이다. 갓 지은 밥.

먹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는데, 까무룩 잠에 빠진 몸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아 하루 종일 빵 쪼가리와 과자를 주섬거리다 저녁에야 겨우 밥을 안쳤다. 드디어 밥을 먹게 된다니! 밥이 생긴다니(?) 갑자기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 졌지만, 김치를 볶을 생각만 해도 아찔해서 겨우 김치통이나 꺼내 밥 되기를 기다리며 김치를 먹었다(이러면서 요리책을 썼단 말이죠...) 배가 고파 먹던 김치를 반통이나 먹고 나서야 밥이 완성되었다. 폴폴 김이 나는 밥을 한 숟갈 떠서 먹는데 온 속이 따뜻했다. 이게 뭐라고 한 번을 못 먹었나 그래.


아버지의 밥

갓 지은 밥 냄새를 맡으면 뜨끈한 김과 함께 어릴 때의 기억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버지는 외근이 잦았고, 지방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얼마 만에 한 번씩 집으로 오곤 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서는 흙냄새와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대부분의 식사 때마다 어머니는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 한 공기를 아버지의 몫으로 마련해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가 수저를 들기 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를 가리키며 "밖에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니 따뜻한 밥 드시라고 기도하자."라고 말하곤 했다. 매 끼니때마다 반복되던 일이니 습관처럼 눈을 감고 기도하는 척했지만, 실은 별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마련해주는 한 그릇 밥의 무게를 몰랐으니까.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밥 한 그릇 못 챙기는 지금에서야 종종 그 무렵의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내 나이 또래의 아버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던 아버지. 친구가 없던 아버지. 손이 거칠었던 아버지. 술을 많이 마시고는 화를 내다가 끝내 "너무 외롭다"라며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한 그릇 밥 속에 무수한 쌀알이 담긴 것처럼, 아버지의 그 말속에는 세상이 어떤 풍경이 담겼던 걸까.


어머니의 밥

결혼 후 어머니는 밥벌이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돈은 남자가 벌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그 시절 다 그렇듯 꽤나 젊은 나이에 연년생 둘을 낳아 기르면서 생활에 쫓기느라 자연히 밥벌이와 멀어지게 됐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또래의 동네 아주머니들과 둘러앉아 소소한 소일거리를 찾아 하기도 했는데-부업이라고 했다-, 자다 말고 가끔 눈을 떠보면 뭔가를 붙이거나 조립하고 있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벽에 커다랗게 비쳤다. 아버지가 한 번도 삶에서 밥벌이를 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한 번도 밥 짓는 일을 빼놓은 적이 없다. 당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밥하기 싫은 날은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밖에서 좀 사 먹고 그래도 될 텐데, 어머니는 바깥에 있다가도 밥때를 놓칠까 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 집 식구들은 밥을 많이 먹는 편이라 어머니가 한번 밥을 할 때는 밥솥 두 개에 밥을 안친다. 많은 양의 밥을 동시에 하나 보니 시간이 좀 지나면 밥은 자연히 마르게 되는데 , 어머니는 평소에도 이에 대한 고민을 늘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식당에 갔다가 백반이 담겨 나오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보고는 힌트를 얻어, 그날로 우리 집에는 '식당밥' 시스템이 도입됐다. 밥솥을 열면 식당처럼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쪼롬이 모여있다. 밥 한 공기 추가할 때마다 천 원을 낼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은 때마다 배가 고픈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정말 그렇지 않나. 돈을 버는 일을 '밥벌이'라고 일컫는 것도, 살아가는 것을 굳이 '먹고사는 일'이라고 부르며 먹는 행위를 제일 앞에 두는 것도. 그럼에도 먹고사는 일이 비로소 충족되면 '사람은 빵만으론 살 수 없다'라며 배부른 삶 그 너머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참 알량한 족속.

밥벌이에 내몰려 밥 한술 못 들 때,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왜 먹지도 못하나 하는 서글픔이 밀려올 때 생각한다. 그때의 아버지는 매일 무얼 먹었을까? 어머니의 바람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가졌을까? 어머니는 왜 그렇게 열심히 밥을 지었을까. 밥하기 싫은 날도 많았을 텐데, 밥을 할 수 없는 마음도 많았을 텐데 그런 날들을 어떻게 다 버티고 아직까지 밥을 지을까.

'밥벌이'라는 말을 밥처럼 한술 떠 넣고 곱씹는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한평생 밥을 둘러싼 드라마를 살아야 하지만-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하고, 맞서야 하고, 버텨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먹어야 하고-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팔아 가장 따뜻한 걸 버는구나. 사람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가장 따뜻한 것으로 채운다. 밥상 위에 놓인 것들 중에 밥보다 따뜻한 것을 먹은 일이 없다.


밥은 왜 이렇게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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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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