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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과 이야기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주 마인드풀에 관한 다채로운 정보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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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11. 애써 주문을 외운다 - 짜장면


짜장면 만드신 분? 

점심때쯤 미팅 장소에 도착했다. 미팅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마땅히 다른 선택지도 없어 바로 근처의 중국집으로 향했고, 역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이 식당 안에 바글바글했다. 간단하게 먹고 일어날 요량으로 주문한 것은 짜장면. 곧이어 짜장면이 나왔는데, 일단 비주얼이 의문이다. 

"이건...우동면인가?"

맞은편에 앉은 상사의 한마디. 

"음... 수타면인데 좀 굵게 뽑힌 걸까요?" 

퉁퉁 분 면발인지, 아니면 우동면인지. 게다가 색은 또 왜 이래? 짜장이 언제부터 커피색이었나. 의문의 비주얼은 넘어가더라도 한 젓가락 뜨자마자 외마디 탄식이 흘러나왔다. 면발이 슬라이드 미끄럼틀처럼 내 목구멍을 부드럽게 타고 흘러들어 가 허기진 위장을 격렬하게 적셨다. "이, 이것은 미미美味!"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입에서 흘러나온 탄식은 "이, 이것은 뭥미!" 대체 무슨 맛이란 말인가. 우동과 된장과 짜장을 수타 권법으로 한데 뒤섞은 오묘한 맛이었다. 그래도 엄격한 조기교육-반찬 투정을 했다가 엄마가 그대로 밥그릇을 뺏아가서 버린 적이 있다-탓에 밥상 앞에서 투정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온몸의 세포에 박혀있어, 맞은편 상사의 정황을 흘끗 살피며 말없이 몇 젓가락 더 떴다. 

"아, 도저히 못 먹겠다."

탁, 하고 젓가락을 먼저 내려놓은 건 상대방이다. 나도 슬며시 "배부르네요"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바삐 털고 일어나 들어간 회의실에서 내리 몇 시간 동안 한자리에 붙박여 말과 말이 오가는 현장에 앉아있었다. '개 털렸다'는 사자성어(?)로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미팅이었다. 점심으로 맛있는 걸 먹었더라면 좀 버틸 수 있었으려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의 기분 좋은 만족감이라면, 내게로 쏟아지는 날카로운 말들을 통통 튕겨낼 수도 있었을 텐데. 


회사로 복귀하는 자동차 안, 클라이언트 앞에서 차마 터트리지 못하고 애써 삼킨 열기와 함께 꼬르르륵 심해로 가라앉는 중. 시큼하고 묵직하고 엉망진창인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내 잘못이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아, 내 잘못이구나. 내가 을인 게 잘못이구나...  문득 생각과 느낌이 올라오면 그걸 물체처럼 인식하고 표현해보라는 명상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 눈을 감고 내 안의 감정을 바라보자. 일단 손을 델 것처럼 뜨겁고, 실타래 엉킨 것처럼 마구 복잡하게 꼬여있고, 색깔은 거무튀튀한 데다... 감정을 구체화할수록, 생각과 느낌이 점점 또렷한 형상이 되어 눈꺼풀에 새겨진다. 어? 어딘가 익숙한 형상인데. 이건... 아까 먹은 짜장면이잖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최선을 다해 한 젓가락 

마음이 상할 때마다 애써 주문을 외운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 살다 보면 맛없는 짜장면도 먹을 수 있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 살다 보면 애먼 욕 좀 들을 수도 있지. 중요하지 않다. 중얼중얼 주문을 왼다고 해서 마음이 자연스레 풀리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엉키는 일은 있고 그럴 때마다 내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함께 뒤엉킬 순 없으니까. 두 손 두발 다 들고 뛰어들어서 풀어야 할 일이 있고, 내버려 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내버려 두려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내 안에 내장되어 있지도 않은 쿨한 척을 하다 보면 저 깊은 곳에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한테는 중요하다고, 이 자식아!"


그래, 사실 중요하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사소하다'는 건 대체 누가 결정하는 건가. 남들에겐 손톱 거스러미 같은 일이라도, 내겐 클 수도 있다. 내게는 메뉴판에 그려진 것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모양과 맛의 음식을 먹는 일이 중요하고, 작은 말 한마디라도 따숩게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소한 걸 잘 시키는 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맛있는 음식을 내오는 식당, 자기 기분뿐 아니라 상대방 기분도 배려해 말할 줄 아는 사람. 세상에는 사소한 것들이 너무나 많고(세상이라는 게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가 아닌가), 사소한 것에 온통 마음을 쓰는 나이니, 툭하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마음의 밸런스를 잘 조정해야 한다.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인데 1)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냉정하게 구분하기 2)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보고,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흘려보내기(어느 기도문에서 배웠다)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여전히 을이다. 클라이언트의 멱살을 잡고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으라고 할 순 노릇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맛없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먹은 날엔, 저녁으로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상한 내 마음을 다독인다. 후루룩후루룩, 최선을 다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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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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