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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8편|굳은살 같은 저항심

부제_내 어둠을 돌보는 연습

 

우리는 행복할 때 행복에 저항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저항하는 힘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기 어둠을 자각하는 일이며, 그 어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내 마음의 어둠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명상하고, 수련하면서 순간순간 마음속에서 어떤 저항이 이는지 알아차려보기를 선생님은 권하셨다.

 

저항은 거역하고 버티는 힘이다.

 

눈을 감고 내 마음 속 어둠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의심하고 부정하는 마음일까. 기피하고 차단하는 마음일까. 몇 가지 요소를 떠올려보았지만 핵심에 닿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이번엔 발목과 손목의 경험을 확장하는 동작을 시작으로, 엉덩이 근육과 허리로 이어지는 척추의 유연성, 누워서 허리를 아치형으로 한껏 들어 올려 손목으로 받치고 하체를 끌어올리는, 조금쯤 생소한 동작을 해나갔다.





 

사실 이런 동작들은 손목과 발목이 좋지 않거나 엉덩이 힘이 달리는 경우, 어설프게 동작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통증을 느껴서 끝까지 따라가기 쉽지 않다.

가령, ‘뒤집힌 활’ 자세에서 발목이 유연하지 못하면 까치발을 들게 되고, 까치발을 들고서라도 손으로 발목을 끌어와 잡고 허리를 들어 올리려 하면 자연히 허벅지와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데,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이 턱없이 부족하면 무릎에 무리한 힘을 주면서 통증을 유발한다. 내 경우, 엉덩이와 허벅지는 물렁살에 발목과 무릎은 피노키오의 관절처럼 딱딱하거나 삐걱거렸기 때문에 어설프게 동작을 유지하는 데만도 통증이 일었다.



이때는 온통 몸에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들여다볼 짬이 안 난다. 동작을 따라갈 때는 마음만큼 안 되는 걸 시도하느라 정신없고, 동작을 유지할 땐 조금이라도 힘의 중심과 분산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버티는데 온 에너지를 쓴다. 그럼에도 어려운 동작이 반복되는 중, 통증과 함께 생각의 바람이 비집고 들어올 때면 그 순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현재의 통증을 기피하고 싶은가, 어려운 동작을 재차 시도할 때 주저함이 있는가.

통증이 있을 때는 힘들고 어려운 동작들은 마음을 왕창 먹고 해야 하지만 기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들은 용량에 맞게 조절해가면서 언젠가는 해내고 싶은 부분들이지, 내 마음 속의 어둠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몸의 어긋난 부분들을 교정해나는 기쁨이 더 커서, 그에 수반되는 통증은 기꺼이 감수하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느끼는 통증은 더 나아지기 위한 통증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희망과도 같아서 간혹 통증의 쾌감을 즐기기도 했다.

 

선생님은 수련 중 자기의 어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실생활 속에서도 살펴보기를 권하면서, 자신의 어둠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다.

 


 

길을 걷고 밥을 먹으면서 내 마음의 저항심이 될 만한 후보를 이리저리 꺼내어보았다. 하지만 깊숙이 박혀서 몇 겹의 옷을 껴입은 그 은밀한 심지에 바로 도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쉽게 알아차렸다면 지금의 나는 좀 달랐겠지.

 

나는 몸과 마음을 남남처럼 분리해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늘 느끼지만, 몸의 통증은 오히려 마음의 통증보다 견디기 쉬웠다. 예전엔 마음이 힘들면 앉은 자리에서 10,000칼로리는 너끈히 폭식하고 집곰처럼 방안에 틀어박혀서 몸을 혹사했다. 그건 몸과 마음은 연대책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음의 통증을 몸이 그야말로 ‘몸빵’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마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했다. 육체적으로 무리한 일이 없는데도 무턱대고 몸이 아픈 때는 언제인가.

그건 몸이 힘을 잔뜩 주는 때였다. 몸은 마음이 긴장하면 힘을 붙들었다.

 

내게는 네 명의 이모가 있다. 그중 대장부 기질로 사업을 일군 넷째 이모와 유독 고등학생 시절 손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그야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넷째 이모와 나 사이에 남다른 교감을 일으켜서 시작된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이모들의 마음도 애틋하게 다가왔다. 어떤 순간에는 자식이 없는 셋째 이모의 마음이, 다른 순간에는 사고로 몸이 약해진 막내 이모의 마음이 밀려오면서 순간순간 손 편지로만 표할 수 있는 내밀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주로 넷째 이모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른 이모들이 떠올랐고, 더불어 엄마의 마음도 밀려와 모두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 성향 상, 편지 한 통을 쓰는 데는 고밀도의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평균 편지 한 통을 몰입해서 쓰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렸으므로, 마음이 닿고 싶은 대로 모두에게 편지를 쓰자면 하루를 몽땅 투자하고 탈진 상태가 된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밸 정도로 글씨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느 순간 이건 중노동으로 변질돼버린다(미리 한 명씩 나누어 편지를 써두었다면 좋았겠지만 평소엔 그런 생각이 좀처럼 일지 않는다는 게 함정).

처음엔 진심을 다해 편지를 써서 전달하지만, 6개월 후든 1년 후든 다음 순간은 버릇의 늪처럼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럴 때 내 마음은 편지를 쓰겠다는 생각만으로 이미 부담감을 떠안으며 넘어져버린다. 편지를 ‘쓰겠다’가 아닌 ‘써야 한다’로 변질된다. 물론 아무도 내게 별달리 기대하는 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서는 한 사람에게만 편지를 전했을 때 내심 실망할 다른 마음들이 자꾸 부대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다(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인다는 건 내 마음의 문틈으로 소량의 관심과 애정이나마 흘러나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번 마음 쓰이기 시작하면 용량을 넘어서서 몸의 에너지보다 마음이 먼저 내달리는 것, 그게 문제가 아닐까.

 

애초에 한 사람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려고 간 곳에서 어느새 주변에 사는 언니의 선물도 사고 싶고, 얼마 후 만날 J의 가족 선물도 마련하고 싶고, 덩달아 아직 친해지지 못한 네 명의 조카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고픈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그 모두를 챙기기엔 도무지 기력이 안 따라준다. 소소하게 마음을 전달할 정도의 선물을 마련한다 해도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과연 이런 걸 마음에 들어 할까? 생각이 한없이 땅굴을 파고든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버리고 결국 백기를 든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그와 만날 생각을 품고 지내는 나날 속에서 이미 번아웃!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때만 못하게 미적지근한 상태가 돼버리는 것이다. 그럴 땐 차라리 당장 눈앞의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선택이든 산뜻하게 하고 그걸로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못해서 어떤 사람들에게 나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정확히는 요령부득의 인간 같지만).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이기적이기란 얼마나 께름칙하고 부대끼는 일인지.

 

그러고 보면 나는 어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에서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닐까.

무리하게 마음을 써야 할 일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때,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갇힌 듯 아득함을 느낀다. 수십 년간 나의 기질과 심정을 지켜봐온 가족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어주고 이해하지만,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내 모습에서 다른 생각들을 품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고, 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자책한다. 어느 한 쪽을 깔끔하게 선택하지 못하는 마음, 그래서 초래되는 '어중간한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내 마음의 저항심, 어둠이 아닐까.

 

 

수련할 때 몸의 통증을 받아들이듯, 부담감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통증도 내 용량 안에서 취하는 최선의 선택임을, 더 나아지기 위한 통증임을 믿고 그 믿음을 희망처럼 여기며 통증의 쾌감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통증인지 아는 것, 이 통증이 나를 다치게 하는 통증이 아니라는 믿음, 그대로 괜찮다는 존중, 무엇보다 이런 마음의 과정을 확보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자욱한 부담의 안개가 옅어지기도 할까. 그러기를 바란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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