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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마음에게 한 입01. 외로움이 서걱거릴 때 - 참외


#01. 외로움이 서걱거릴 때 - 참외



설익은 마음 같은 소리하고 있네



몹시 하이텐션이던 얼마 전, 연재를 위한 코너명을 미리 짜두었다. 코너명은 보시다시피 <설익은 마음에게 한입>. 마음이 떫어서 쓴 맛을 낼 때 추천할만한 음식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방바닥에 누워 이불을 싸매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것이다.


 “설익은 마음같은 소리하고 있네...”


설익은 마음은 취사버튼을 누르기라도 했지, 이불 속 내 마음은 취사버튼을 누른 줄로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밥때되어 뚜껑을 열어보고 나서야 취사버튼 깜빡한 걸 깨닫고는 소리 없이 절규하며 양 손으로 양볼을 감싸쥔 상태다. 뭉크의 <절규>속 주인공처럼(양볼을 쥐어짜지 않으면 다행이다). 날것의, 하나도 익지 않은, 절대 삼킬 수 없는, 삼키지도 못하는 마음주제에 감히 설익은 마음을 위로하겠다니. 가소롭구나, 하이텐션 시절의 나여. 날 것 그대로의 못난 마음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요 며칠 정말 힘들었다. 회사에서도 모니터를 보고 앉아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었‘다(아이유처럼 어느 오빠가 좋아서 눈물을 줄줄 흘린 게 아니다. 팀장이 한 말에 상처를 입어서다). 못난 기세를 몰아 엄마에게 전화까지 걸어 “이게 다 내가 어려서 가정교육을 잘 못 받아서다!"라고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코로나 위험지역인 대구에 살고 있다. 가뜩이나 고생중인 엄마에게 이 무슨... 엄마의 잘못이 있다면 가정교육을 너무 빨리 끝낸 것일 테다어쩜 서른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일까.


이불을 싸맨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과연 설익은 마음에 효과적인 음식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내가 진작 먹었겠지! 설익은 마음이라도 삼킬 순 있으니, ABC초콜릿 한줌 입안에 때려넣고 소주랑 같이 삼키라고 쓸까. 아니면 사찰요리 3년차라는 걸 강조하며 “마음이 복잡할 땐 순정한 쌀밥과 슴슴하게 무친 나물을 드세요. 언제 그랬나싶게 마음이 차분해질 거예요.”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하나.


코너 명부터 바꿔야겠다 싶어 노트북을 켰지만, 둘 다 아무 말 없이 몇시간째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다. 나는 빈 화면 위에서 일정 속도로 꿈뻑이는 커서를, 모니터는 멍한 내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다. 소개팅 나간 남녀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애써 시간을 때우기 위해 엉덩이에 힘을 주고 간신히 앉아있는 상태 같다. 도무지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으니, 하이텐션 시절의 내가 썼던 원고를 뒤적거려보기도 했다(건질만한게 없어서, 다시 소개팅 상태로 되돌아왔다.) 오랜 소개팅으로 배가 고파 참외 하나를 깎아서 우적우적 씹었다. 아... 참외?


빛이 나는 솔로


“참외의 ‘외’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아들, 외딴집 할 때의 그 ‘외’다...(중략)...

참외만은 ‘참’이라고 진짜임을 강조하는 모자를 썩 쓰고 ‘외로움’의 절대 강자가 되어 수천 년을 버텨오고 있다” 

- 김서령, <참외는 참 외롭다> 중


몇 해 전이었나, 평소처럼 서점을 기웃거리다 이게 무슨 말 장난인가 싶어 집어든 <참외는 참 외롭다>에 실린 글이다. 인덱스까지 붙여놓은 걸 봐서, 그때도 이 부분이 썩 맘에 들었구나 싶다.


과일에 ‘진짜 외로움’이라는 이름을 덜컥 붙여놓다니, 아무리 과일이라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게 외로운 이름이다. 막상 참외를 들여다보면 과일 중에 최고로 경쾌한 노란 색인데다, 통통하게 물 오른 동그라미라 외로움은 전혀 모를 것 같은 얼굴인데. 냉장고에서 하나 남은 참외를 꺼내와 “너 외롭니?”하고 말을 걸어봐도 참외는 대답이 없다(당연한 말이지만). 참외는 어쩌다 ‘찐’고독의 대명사가 됐을까.


자라는 과정 때문이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고 열매도 쌍쌍인데, 참외는 꽃도 열매도 하나뿐이란다. 혼자서 비바람 다 견디고 둥글게 익어가는 과일이라 ‘참외’라는 이름이 붙었다. 책에서 말하는 외로움은 싱그러운 땀내와 청량한 고요다. 곁에 아무도 없는 시간, 홀로 자신의 견고한 껍질을 깨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책에서 ‘외로움은 이렇게 좋은 거니까 외딴 섬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외로워 본 사람이 비로소 곁을 내줄줄 알게 되니, 충분히 외로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몇 해 전에 읽었으면서도, 감동받아서 인덱스까지 붙여놓았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진짜 외로움이라는 이름은 너무하다’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나는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외로움을 오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자꾸 눈물이 나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고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없는 건, 지금 내가 충분히 괴롭고 충분히 아프고 충분히 외롭다는 뜻인데, 이 마음을 자꾸 피하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외로워야 마음 안에 단물이 고여들 수 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시큰거렸다. 눈가에 맺힌 건 눈물이 아니라고 해두자. 첫 회부터 너무 자주 우는 사람인걸 들키긴 싫다(다 말해버렸지만).

참외가 가진 외로움은 ‘진짜 외로움’이다. 인간 샤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니가 끈적하고 섹시한 목소리로 열창하는 ‘빛이 나는 솔로’다.  다시 참외를 씹는다. 외로움이 입안에 남아 서걱거린다.


참외 한 알이 나를 위로하는 이 아침.

설익은 외로움엔 잘 익은 외로움을 드세요, 여러분.



 

     ABOUT AUTHOR

     꽃반지


     글로 마음을, 요리로 몸을 돌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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