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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안에서 존재연습6편|범고래와 돌고래 사이 어디쯤

부제_무심하게 통증 바라보기

 

한번 목 근육이 놀란 전적이 있어선지 어깨와 경추로 이어지는 근육이 엉켜선지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이번에는 왼쪽 목에 담이 왔다. 목을 돌리다가 근육이 꼬여서 서둘러 주물렀는데도 통증이 하룻밤이 지나도록 가시질 않았다.

다음 날도 여전해서 요가 수련을 하러 갈지 말지 망설였다. 아픈 상태로 수련하는 건 몸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지난번 아픈 상태로 수련하러 갔다가 눈에 띄게 회복되는 과정을 봤기 때문에 일단 가보자고 생각했다. 1초라도 경험해보는 마음으로, 가보기나 하자고.

 

“오늘은 어떤 것들이 찾아올지 자기 명상 시간에 들어가 봅니다.”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명상이 시작됐다.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 말들을 우리는 긍정으로 전환해볼 수 있습니다. 예민함에는 예리함이 있고, 깔끔을 떠는 일에는 청결함이 있습니다.

어떤 성질에는 늘 두 가지 면이 함께 따라옵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힘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음을 바라보면서 수련에 임해보도록 해요.”


‘파드마(연꽃 자세/결가부좌)’를 하고 양 손으로 무릎을 감싼 ‘찐 무드라’를 한다. 눈을 감으면 잔잔하게 흐르는 요가 음악이 먼저 귀로 들어오지만 잠시뿐, 곧 갖은 상념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워진다. 바깥은 고요한데 내 안에서는 온통 정신이 없다. 그럴 때 선생님은 회음부와 배꼽 아래 3cm 지점을 납작하게 조이고, 명치를 끌어올리고 턱을 가슴으로 내린 자세로 ‘숨을 쉬라고’ 조언한다. 깊이 숨을 들이쉴 때 가슴이 부풀어 오르면서 숨이 ‘아즈나 차크라(미간)’를 지나 정수리로 갔다가, 뒷목 줄기와 등을 타고 꼬리뼈까지 차차 내려오며 다시 회음부를 조이는 순환이 이어진다. 한동안 숨이, 숨결이 온몸을 부풀리고 가라앉히며 몸속을 돈다. 그럴 때 정수리 끝까지 차오른 숨은 쪼그라든 뇌 근육을 펴듯 찌르르한 감각을 가져오고, 기가 정체돼 있던 몸속은 정화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잎을 모으고 고개를 떨군 시든 꽃 같다면, 그 순간에는 줄기부터 꼿꼿이 서서 꽃잎의 낱장 하나하나를 다 펼친 꽃의 자세가 된다.

 

오늘의 동작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결가부좌 자세로 한쪽씩 팔과 어깨를 뒤로 돌려서 반대편 발가락이나 발등을 잡는 동작.


 

나의 경우, 결가부좌가 어려워서 반가부좌(한쪽 발만 반대 허벅지 위로 끌어올리는) 자세로 한쪽씩 몸을 돌려 반대편 발가락을 잡는데, 왼쪽에 비해 오른쪽 팔을 움직일 때 걸림이 심했다. 예전부터 유독 오른쪽 어깨와 팔이 자주 저렸는데, 역시 이 동작을 할 때 어깨뼈가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선생님이 돌아가며 수련생들의 자세를 잡아줄 때면 정말 몸이 굳어 안 되는 자세인지, 더 깊어질 수 있는데 수련생 자신이 두려움에 막는 건지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엔 내가 느끼기에도 몸이 굳어 안 되는 경우였다. 내 오른팔을 조심스레 돌리던 선생님도 느끼셨는지,

 

“아프죠? 그래도 최대한 통증에 머물러보려고 해 봐요.” 하고 조언하셨다.

우리가 아픔 속에 있더라도 아프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서 시원함을 느껴보고, 몸이 열리는 감각을 체험해보려고 하자고. 아프지 않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 아픔 속에 젖어보자고.

 

목에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리는, 예전 같으면 수월한 동작에도 어김없이 통증을 느꼈다. 그날그날의 수련에서는 때로 내 상태를 내다본 것 마냥 꼭 필요하거나 기피하는 동작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날이 그랬다. 목이 아파서 두려움을 안고 있는데 지난번에 실수로 목을 다친 후굴 동작과 다시 맞닥뜨렸다.


 

목을 넘기려고 하자마자 통증이 찌릿하게 머릿속을 회색지대로 만들었다.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참으며 천천히 몸을 뒤로 넘기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마치 내 심정을 꿰뚫기라도 한 마냥,

 

“목 앞면이 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목 뒷면이 뭉친 것처럼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그 불편감을 파괴한다는 마음으로 서서히 목에서 힘을 놓아봅니다. 뒷머리가 완전히 어깨를 넘어 등에 닿을 듯이.” 하고 조언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믿었다. 통증을 거치면서도 서서히 고개를 젖혔더니 뭉친 반죽을 펼치듯 시원함이 통증과 함께 찾아왔다. 두려워 말고 목에서 힘을 놓자고 되뇌었다. 선생님은 자세를 교정해준 뒤 그 상태로 자신의 하체 힘을 믿고 뒤로 간 손만 가슴 앞으로 가져와 합장을 해보라고 했다. 전에는 허리힘이 불안해서 손과 함께 상체를 들어 올려버렸는데 이번에는 한 손만 먼저 가슴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후굴한 채로 허벅지와 허리, 엉덩이 힘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한 채로 후굴 동작을 유지했다. 관건은 서서히 몸을 들어 올리면서 턱 당기는 힘을 이용해 목을 가장 나중에 들어 올린 뒤 아기 자세(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잘해야 목이 다치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여 동작을 완수하고 나자 약간만 움직여도 신경을 날카롭게 했던 근육 안의 칼날이 쑥 빠져나간 것 같았다.

 

선생님은 어떤 동작을 할 때 통증이 느껴진다면 거리감을 두고 그 통증을 무심히 바라보자고 하셨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을 지나가는 아픔은 곧 사라질 것이며 내 것이 아니다. 아픔을 두려워 말자고.

 

무심하게 통증을 바라보기. 마치 심해로 무회전 다이빙해서 바다의 킬러로 악명 높은 범고래 등에 올라타는 경지 같다. 말이 쉽지 엄두가 안 난다.

 

처음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을 때가 떠올랐다. 숨 가쁨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3km, 5km 지점을 넘어서면 어느 순간 가뿐 폐와 다리의 통증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러너스 하이’ 비슷한 것을 체험할 때가 있는데, 혹시 그런 걸 말하는 것일까.

몸의 통증보다 마음의 통증이 더 예리하게 다가오는 내게 ‘무심하게 통증을 바라보는’ 일은 바다 뒷골목에서 날카롭게 이빨을 벼린 범고래와 한 공간에 존재하는 일만큼이나 아득하다. 5km부터 10km, 하프코스, 풀코스로 이어지는 마라톤 훈련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듯 통증을 무심히 바라보는 일에도 점진적인 시간이 필요하겠지.

 

수련을 마치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다음 주면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한 부담이 굵직하게 덩어리져 가슴 안에서 부대꼈다. 또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곧 맞이해야 할 일들이 숨을 때때로 순환하지 못하게 붙드는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선생님의 조언을 떠올렸다. 고통을 무심히 바라보자.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거야. 범고래는 무심히 지나갈 것이고, 지나고 보면 해맑은 돌고래가 범고래의 탈을 벗고 다가올지도 몰라.

주문을 외듯 혼자 속삭거리고 났더니 담담함이 여름날의 미풍처럼 아주 살짝 스쳐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10km는 틀렸다고, 5km를 신청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면서도 어찌어찌 10km를 완주했던 것처럼, 내 페이스에 맞게,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 언젠가 마음의 통증도 무심히 바라보는 때가 드문드문 찾아오지 않을까. 태연해질 순 없어도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간다.




 

     ABOUT AUTHOR

     여름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며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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